조사실에서 오래 보게 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답을 만들어 내는 모습입니다. 모르는 것을 물었을 때도 그렇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날짜를 어림으로 맞추어 보고,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짐작으로 채워서라도 답을 내놓으십니다. 답이 늦어지면 그 짧은 침묵이 어색해, 그 어색함을 말로 메우려 하시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그것이 성실함이고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수사관이 다그쳐서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묻는 쪽은 묻는 것이 일이고, 답을 지어내는 쪽은 스스로 지어내는 것입니다. 다만 피의자로서 조사받는 과정에서는 매우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모르는 것은 당연히 모른다고 진술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에 상상과 추측을 더하여 진술하는 것은 매우 불필요하고, 또 결과적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조사실의 문답은 흘러가는 대화가 아니라 조서에 기재되는 진술이기 때문입니다. 어림으로 맞춘 날짜도, 짐작으로 채운 다른 사람의 사정도, 조서에 적히는 순간 나의 진술이 됩니다. 대화는 흘러가지만 진술은 남습니다. 그리고 어림으로 맞춘 것이 나중에 확인되는 객관적인 사실과 어긋나면, 그 어긋남은 지어낸 부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실대로 한 다른 진술들까지 같은 저울에 올려놓고 다시 의심받게 만듭니다. 몰라서 지어낸 답 하나가, 알아서 한 답들의 무게까지 깎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사건을 다루면서 확인하게 되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수사기관에 흘러 들어가는 정보의 양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 보통입니다. 그 정점에 진술거부권이 있습니다. 아예 진술하지 않을 권리까지 법이 정해 두고 있는데, 하물며 아는 만큼만 답하고 묻지 않은 것까지 덧붙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조사실에서 모르는 것을 질문받았을 때 필요한 것은 순발력이 아닙니다. 모른다고 답할 수 있는 준비입니다. 모른다는 답은 성의 없는 답이 아니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정확히 지키는 답입니다. 성실하게 답하려는 그 마음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일상에서 평생 지켜 오신 그 성실함이 조사실에서는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조사를 준비하는 자리에서 미리 말씀드리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