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서 변호사는 한쪽 편에만 섭니다. 원고 곁에 서기로 했으면 원고의, 피고 곁에 서기로 했으면 피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합니다. 너무 당연해서 새삼 설명할 일도 없는 이 원칙을, 흔들어 보려는 제안이 가끔 상담실에 도착합니다.
계산이 서고, 법적으로도 충분히 다투어 볼 만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방향이 이상해집니다. 겉으로는 한쪽만 대리하는 모양을 갖추되 실제로는 양쪽의 진행을 한 손에 쥐게 해 달라는 것, 상대방이 선임할 변호사까지 이쪽에서 세워 주고 사건의 흐름을 좌우하겠다는 것. 요컨대 법원이 보게 될 다툼의 모양을 실제와 다르게 만들어 달라는 부탁입니다. 이런 부탁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송이 절박해질수록,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 지름길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만 그 부탁은 노골적인 문장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분 역시 자신의 부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짧고 중립적인 한 문장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저는 대부분 이렇게 답합니다.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거절의 이유가 변호사의 윤리 하나뿐이라면 오히려 설명이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계산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 사건이 안고 있는 위험은 법인의 경영이라는 측면에서도 감당할 이유가 없는 위험이고, 그런 요청을 하시는 분과는 길게 신뢰를 쌓는 관계가 되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그 한 건에 쓰일 에너지를 지금 진행 중인 사건들에 쓰는 쪽이 모든 면에서 낫다는 것을, 저는 수치가 아니라 직감으로 압니다.
물론 지금의 이 단호함에는 토대가 있습니다. 변호사 초반에는 사건 한 건 한 건이 한 달 한 달의 운영과 직결되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그 기저에는 경제적인 빠듯함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 한 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여유와 심리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시절의 저였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시절에도 결론은 불가능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유혹과 아쉬움을 지나야 했을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결론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의 짧은 즉답 안에는, 그 시절이었다면 길었을 시간이 접혀 있습니다.
답을 들은 분은 대부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속을 내보였는데 거절까지 당한 자리에, 오래 앉아 계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자리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붙잡지 않습니다. 어차피 저와는 인연이 없는 분이고, 그런 인연은 빨리 끝나는 쪽이 서로에게 낫습니다. 같은 제안은 아마 앞으로도 상담실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때에도 저는 같은 답을 드릴 생각입니다. 그 답을 드리고 나면 저는 지금 진행 중인 사건들의 기록으로 돌아갑니다. 소송에서 변호사는 한쪽 편에만 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