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내려앉은 시골집 마당에서, 아버지는 말린 나물과 채소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30년 후의 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제가 곧 경험하게 될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을. 시골집이라는 매우 시각적인 배경이 눈앞에 놓이니, 저는 그것을 한층 더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집은 조상 대대로 10대째 살아 내려오고 있는 저의 터전입니다. 조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20년 넘게 비어 있었고, 방치된 집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퇴직하신 부모님도 한동안은 도시 생활을 이어 가셨습니다. 그러다 4~5년 전, 기울어 가던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마당도 정비하면서 부모님은 이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부모님은 봄과 여름과 가을을 이 집에서 보내십니다. 돌이 깔린 마당에 서면 난간 너머로 마을의 기와지붕들과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마당 한쪽에는 장독대가 놓여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 집으로 돌아오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저의 미래 모습을 확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결심한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본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계획하거나 결정한 일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먼저 그 길을 걸어 돌아오셨고, 저는 마당에 서서 그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곳은 저의 출발점이었고, 지금도 휴일이면 돌아오는 저의 현재이며, 제가 인생을 마무리할 저의 확인된 종착역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저의 다음역이 어디일지, 그다음 역이 어디일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최종역이 어디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끝이 정해진다는 것은 얼핏 갑갑한 일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제게 일어난 일은 반대였습니다. 그때 저는 굉장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불확실성에서 벗어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디에 도착할지 몰라서 무겁던 마음이, 도착할 곳이 정해지자 가벼워진 것입니다. 다음역을 알 수 없다는 사정은 그대로인데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이 집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휴일이 끝나면 저는 다시 저의 다음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역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알 수 없음이, 예전만큼 무겁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이 마당에서 같은 계절들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저는 석양 속에서 나물을 정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조금 더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