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파기해 사건을 돌려보내는 일은 드뭅니다. 확률상 극히 희박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심리불속행기각을 면할 가능성이 20%가 채 되지 않고, 파기환송을 받는 것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경험한 자가 흔치 않을 정도입니다. 법률적으로도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다투는 자리가 아닙니다. 요컨대 사실오인은 상고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법리오해나 채증법칙위배의 위법, 심리미진의 위법 등 매우 제한된 상고이유만이 대법원에서 심리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다보니 변호사들은 관행적으로 상고이유서는 마음을 비우고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마음을 비우고 쓰다보니 제대로 된 상고이유를 개진하는 것도 어려운 일로 인식됩니다. 또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항소심 판결문에서 법리오해를 찾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상고이유서를 수십 번을 고쳐 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의 실수로 항소심에서 완패한 사건이었습니다. 1심에서 완전히 이겼던 사건이 뒤집혔고, 판결문은 항소심 판결의 주된 이유로 저의 실수를 지적하고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 저는 수억 원의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의뢰인에게 드릴 수 있었던 말은 상고심에서 바로 잡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뿐이었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길은 파기환송을 이끌 수 있는 상고이유서의 작성 그 하나로 좁혀져 있었습니다. 파기환송을 받지 못하면, 그 판결문과 판결문에 적힌 저의 실수가 그대로 확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쓰고 고치기를 수십 번 반복했습니다. 수십 번의 수정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형식적으로 사건의 당사자는 의뢰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제 사건과 다름 없는 사건의 상고이유서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판의 결과에 따라 제 처지와 책임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작성하던 상고이유서가 얼마나 준비가 덜 된 서면이었는지. 영혼을 담은 서면 한 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큰 산고를 겪은 후에야 나오는 것인지,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건은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파기환송으로 돌아왔고, 결국 승소로 끝났습니다.
그 경험이 그 후 모든 서면을 특히 상고이유서를 완벽하게 작성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건처럼 바로 잡을 법리적 근거가 확실한 상고심 사건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 고등법원은 대부분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판결문을 쓰기 때문입니다. 바뀐 것은 다른 것입니다. 상고심을 대하는 저의 업무와 저의 일처리를 객관화해서 돌아보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대법원의 문이 좁다는 사실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그 문 앞에 서는 서면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저는 의뢰인의 사건이 제 사건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계기를 소중한 경험적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