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변호사가 결재를 올린 서면을 읽다가, 잠시 멈추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문장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법리가 새로워서도 아닙니다. 서면을 쭉 읽어 내려가는데 의뢰인의 마음이 보이고, 의뢰인의 절실함이 보입니다. 그럴 때 저는 참으로 잘 쓰인 서면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이 보인다는 것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분만 알 수 있는 표식 같은 구체적인 디테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없더라도, 서면 전체가 의뢰인을 따뜻하게 담고 있거나 의뢰인의 억울함을 담담하게 모두 포함하고 있는, 그런 서면이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뭐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저를 이해해 주고 있다는 태도, 그런 눈빛이 있습니다. 서면에서도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의뢰인이 보이지 않는 서면을 돌려보낸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법리가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는데, 읽고 나면 철저히 객관적인 제3자가 사건을 평가해 놓은 문서처럼 느껴지는 서면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서면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훈련받은 대로 정확하게 쓴 서면들입니다. 통과하는 서면은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기준은 하나입니다. 의뢰인이 보이지 않으면 돌려보내고, 의뢰인이 보이면 통과시킵니다.
변호사 일을 오래 해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매우 복잡한 법리를 다투는 사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사실관계의 다툼이고, 상충하는 양쪽의 입장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면의 힘은 판례를 얼마나 정확하게 붙였는가 못지않게, 의뢰인의 사정이 어떤 태도로 담겨 있는가에서 나옵니다.
그런 서면 앞에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면을 검토하는 저 역시 제3자입니다. 그 일을 겪은 당사자가 아니고, 완성된 서면을 처음 읽는 사람입니다. 제3자인 저에게 의뢰인의 마음과 절실함이 느껴진다면, 같은 자리에서 그 서면을 처음 읽게 될 또 한 분의 제3자, 재판부에도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습니다. 그 태도는 저절로 배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노력 없이 의뢰인의 마음과 억울함이 서면에 당연히 반영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 변호사가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고, 문장마다 반영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마디만 합니다. 잘 쓰셨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후배변호사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부분을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것을 이심전심이라고 한다면, 결재란에 그 한마디를 남기는 순간이 저에게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