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경력이 길지 않은 저년차 변호사님들이 쓰는 서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짧습니다. 그리고 법리가 강합니다. 판례를 정확히 찾아 붙이고, 요건을 빠짐없이 짚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잘 쓰인 서면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서면을 자주 돌려보냅니다.
틀려서가 아닙니다. 틀린 곳이 없습니다. 다만 그 서면을 읽고 나면 의뢰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빠져 있는가
의뢰인의 구구절절한 사정이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그 5년을 어떻게 견뎠는지, 그 순간에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상대방과의 사이에 그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법리로 정돈된 문장들 사이에서 그것들이 전부 증발해 있습니다.
읽어보면 이런 느낌이 듭니다. 철저히 객관적인 제3자가 이 사건을 전문적으로 평가해 놓은 문서.
정확하고, 냉정하고, 흠잡을 데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의뢰인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지도, 연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서면 어디에도 "저는 이 사람의 변호인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변호인의 자리는 중립이 아닙니다
저는 저년차 변호사들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훈련받은 대로 쓴 것입니다.
우리는 법을 배울 때 판단하는 법을 배웁니다. 사안을 놓고 요건을 검토하고 결론을 내리는 훈련을 몇 년씩 받습니다. 그 훈련이 몸에 밴 사람이 서면을 쓰면, 자기도 모르게 심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유능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판사가 아닙니다.
법관은 사실관계를 해석합니다. 그것은 법관의 몫입니다. 변호사의 몫은 그 앞 단계에 있습니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실관계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개진하는 일.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사실관계를 더 보충해 오시라고.
왜곡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건 다른 문제이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 사실관계는 존재했습니다. 다만 서면에 적히지 않았을 뿐입니다. 존재한 것을 존재한 대로, 그분의 자리에서 본 그대로 적는 일 — 그것은 변호사의 재량이 아니라 계약상·도의상의 의무입니다.
법관 앞에 놓이지 않은 사실은 심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 앞에 놓아줄 사람은, 이 세상에 변호인 한 사람뿐입니다.
서면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하나는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면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서면에는 목적 말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의뢰인은 자기 서면을 받아 읽습니다. 대개 여러 번 읽습니다. 그 문서는 그분이 자기 사건에 대해 손에 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물건입니다. 재판은 통제할 수 없고, 판결은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그 서면만은 자기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 이야기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사건에서도 똑같이 씁니다. 결과는 증거가 정하고, 증거는 변호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서면에 그분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정합니다.
그것은 통제할 수 있는 일입니다. 통제할 수 있는 일에서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돌려보낸 서면은 대개 며칠 뒤 두꺼워져서 돌아옵니다.
법리는 그대로입니다. 손댈 것이 없었으니까요. 달라진 것은 사실관계뿐입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완전히 다른 문서입니다.
그제야 그 서면에는 누군가의 편에 선 사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