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실에는 거절해도 되는 요구들이 있습니다. 임의제출이 대표적입니다. 임의제출이라 함은 말 그대로 본인의 뜻에 따라 제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사에 입회해 보면, 거절해도 되는 자리에서 거절을 못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위 평소에 바르다, 착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조사라는 자리의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사관 앞이니까, 찍히면 안 되니까 거절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무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아 온 바로는, 그 부담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조사실이 아니라도 우리가 살면서 겪는, 거절이라는 행위 자체가 수반하는 부담입니다. 거절이 어려운 분은 조사실이라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원래 어려웠던 것입니다. 평소 바르고 착한 분들은 수사관에 대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동일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일관성을 보이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르고 착함은 조사실이라고 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걱정의 방향을 바로잡아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수사관의 요구 그 자체가 아니라, 요구를 받으면 들어주고 마는 자신의 오랜 습관입니다. 조사실은 그 습관이 위험해지는 자리입니다. 일상에서 거절을 못 하면 손해를 조금 보고 말지만, 조사실에서 거절을 못 하면 방어의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께 조사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설명을 드립니다. 필요하면 가차 없는 거절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오해하지 않으셔야 할 것은, 가차 없는 거절이란 태도의 사나움이 아니라 내용의 분명함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저 자신도 조사실에서 거절 의사를 밝힐 때는 최대한 완곡한 어투를 씁니다. 어투는 완곡해도 됩니다. 말 한마디에 예의를 담는 것과 요구에 응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분들이 기억하실 것은 하나입니다. 그 자리에서의 거절은 상대에 대한 결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방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거절하고 무엇에 응할지는 사건마다 다르고, 그 판단은 따로 설명이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그 판단 이전에, 거절이라는 행위 자체가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준비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사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 이야기를 미리 드립니다. 평생 지켜 오신 바르고 착한 태도를 바꾸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태도가 위험해지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그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알고 계시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