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으면, 많은 분들이 날짜를 미루어도 되는지부터 걱정하십니다. 검색창에도 같은 질문이 많고, 상담실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질문의 방향은 대개 눈치를 향해 있습니다. 출석을 미루면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닌지, 미루는 것 자체가 수사기관에 좋지 않게 비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입니다.
저의 답부터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경우 저희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조사에 참여합니다. 미루지 말고 그냥 바로 조사에 응해야 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당연히 방어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조사 날짜의 조율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걸려온 그 번호로 저희가 연락해 수사관과 일정을 조율합니다. 일정의 조율이 가능한 것은 수사기관이 인심을 써 주어서가 아닙니다. 피의자 조사는 강제로 끌려 나가는 자리가 아니라 출석을 요구받는 자리이고, 그 날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벌어 놓은 시간은 비워 두는 시간이 아니라 채우는 시간입니다. 먼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고소장의 주요 내용을 확인합니다. 어떤 사실로 고소가 되었는지 모르는 채로는 방어의 방향 자체를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확인된 내용을 놓고 의뢰인의 주장을 정리하고, 필요한 증거자료가 있다면 수집합니다. 그리고 피의자신문 그 자체에 대비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많은 경우 피의자신문은 그분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입니다. 처음 겪는 일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피의자신문에 대한 마지막 대비를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는 그것만으로 별도의 긴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구체적 대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반대로 판단하게 되는 자리도 있습니다. 상담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조사를 미루었거나 출석에 응하지 않아 온 사건입니다. 물론 그 미룸에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건에서 또 한 번의 연기는 준비로 보이지 않고 핑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미루지 않고 일단 조사에 응하는 것이 더 나을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사전에 사건 전모를 확인할 수 없는 그런 경우 에를 들어 정보공개신청을 할 대상 자체가 없는 사건의 경우에도 일단 조사 참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의 신문내용을 통해 사건의 개요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갈림의 기준이 드러납니다. 미루면 불이익인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그 연기가 방어를 위해 채워지는 시간인가, 아니면 이유 없는 지연으로 읽힐 외관인가입니다. 그러니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조사를 미루어도 되는지가 아니라, 미루어 벌어 놓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입니다. 채울 것이 있다면 미뤄야 하고, 채울 것이 없다면 즉시 조사에 응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입니다.
날짜 하나를 다시 잡는 일로 저희 일이 끝난 적은 없습니다. 미루어도 되는지 걱정하며 오신 그 마음에는, 벌어 놓은 시간을 함께 채워 드리는 것으로 답해 드리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