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보낸 서면이 고쳐져서 다시 올라옵니다. 대개 며칠 뒤, 처음보다 두꺼워져서 돌아옵니다. 두 번째 결재입니다.
처음 돌려보낼 때 저는 대개 같은 요청을 합니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실관계를 더 보충해 오시라. 법리를 고치라는 지적은 많지 않습니다. 법리는 처음부터 정확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것은 대개 서면 속의 의뢰인입니다.
두 번째 결재에서 맨 먼저 확인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지적했던 부분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봅니다. 의뢰인의 사정이 보충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개선이 있습니다. 다만 다 읽고 나면 부족함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지적한 자리는 채워졌는데 그 옆자리가 비어 있기도 하고, 사정은 보태졌는데 그 사정이 주장과 완전히 맞물리지는 못하기도 합니다. 처음 제가 마음에 두었던 수준까지 온전히 채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서면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후배변호사가 성의 없이 고쳐 왔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지적된 부분을 잘 반영하려고 애쓴 흔적은 서면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통과시키는 이유는, 의뢰인의 목소리를 담은 서면을 쓴다는 것이 법률지식이 있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판례를 찾는 일, 요건을 정리하는 일은 배우면 됩니다. 기록을 몇 번 더 읽고 선례를 몇 건 더 찾는 것으로 나아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서면에 의뢰인이 보이게 쓰는 일은 다릅니다. 충분한 경험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서면 앞에서 제 기준은 완성이 아니라 개선입니다. 반려는 부족한 부분을 고치게 하는 장치이지, 사람의 성숙을 앞당기는 장치가 아닙니다. 지금 경력이 적은 후배변호사를 닦달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변호사가 성숙해질 시간입니다.
통과시키면서 당부합니다. 오늘 수정하면서 느꼈던 그 느낌을 꼭 잊지 마시라.
그리고 제가 요청했던 것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한다고 말해 줍니다. 의뢰인의 목소리를 담아 달라는 요청은, 원래 손에 잡히는 말로 하기가 어려운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당부도 길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늘 오간 대화의 맥락을 잊지 마시라.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두 번째 서면을 통과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