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은 재판 당일 배심원을 뽑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법정에 들어서면 배심원 후보로 나오신 분들이 자리를 채우고 계시고, 정작 배심원석은 비어 있습니다.
법정형이 사형이나 무기징역,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에는 아홉 분이, 그 밖의 사건에는 일곱 분이 배심원이 되십니다. 그 배심원 자리를 재판 당일 아침 법정에서 채우게 됩니다.
후보자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간략한 설문지를 미리 보기는 하지만,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빼야 할지 결정할 만한 정보가 되지는 못합니다.
저는 사람의 성향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만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 그리고 불확실한 경우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에 동의하는 분인지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동의하시느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동의한다고 답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살인범죄 의심자 10명 중 단 한 명만이 억울한 사람이고, 9명은 살인을 저지른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살인범 9명을 풀어주는 게 과연 맞는지?"
많은 분들이 선뜻 답하지 못하십니다.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확고하게 아홉을 모두 풀어주어야 한다고 즉시 답하시는 분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검사도 재판장도 이 질문에 따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법률가에게는 반응할 것도 없는, 너무 당연한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원칙을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릅니다. 저를 포함해서, 그것을 배운 사람들이 늘 그것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확고하게 아홉을 모두 풀어주어야 한다고 답하시는 분이 배심원이 되시도록 저는 노력합니다. 답을 주저하시거나, 아홉 명에 대한 징벌의 필요성을 강조하시거나, 그들을 벌하지 못했을 때 우려되는 점을 말씀하시는 분은 부득이 제외합니다.
사실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피고인 측 입장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것은 직업법관이 대법원 판례라는 견고한 사고틀 안에서 관습적으로 사고하고 기계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구조적·직업적 한계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법관 한 분 한 분을 개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에 반하여 배심원분들은 말 그대로 대법원 판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대법원 판례에 끼워 맞추어 결론을 내리시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전제로 사안을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하십니다.
위의 절차를 거쳐 배심원 선정이 끝나면 비어 있던 배심원석이 채워집니다. 그리고 대부분 밤 12시가 되어야 끝날 재판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 뵙는 배심원들을 바라보며 다짐을 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업무를 수행하셔야 할 배심원분들을 오늘 하루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헌법이 선언하고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는 원칙임을 확인해 주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