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주장하면 괘씸죄에 걸리는게 아니냐. 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걱정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싶은데, 동시에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보이는 사건. 그 증거들과 양립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항변을 준비해야 하는 사건. 이런 사건에서 의뢰인들은 다투겠다는 말보다 이 걱정을 먼저 꺼내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다퉜다가 더 미움을 사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괘씸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괘씸죄라면, 제가 없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걱정의 과녁이 잘못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괘씸죄가 무죄를 주장했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받는 불이익을 말하는 것이라면,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 전부가 같은 걱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교과서적 논의라지만, 형사재판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습니다.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됩니다. 무죄를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이 원칙에 비추어 너무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불이익이 따라붙는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모든 증거가 유죄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증거와 양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설명조차 없이, 오로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로 절차를 지나가는 경우입니다. 괘씸죄라고 불리는 것이 실제로 있다면, 그것은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설명의 부재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며 그런 태도의 결과를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확실히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유죄 판단은 물론 양형에서도 불리한 판단을 받은 것이라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했던 분들은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태도를 보이시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태도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 나름의 사정,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걱정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상담실에 앉아 괘씸죄를 걱정하는 분과, 실제로 그 불이익에 해당하는 분은 다른 사람입니다. 걱정을 꺼내는 분은 증거를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러 오신 분입니다. 설명을 준비하는 사람은 애초에 설명의 부재를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되묻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무죄 변소가 그런 태도입니까. 선생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대부분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답하십니다. 아닙니다, 지금 제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순간 걱정은 제가 없애 드린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떨쳐내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다툴지 인정할지의 판단까지 제가 대신 정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걱정이 향해야 할 과녁이 어디인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까지이고, 그 설명만은 부족하지 않게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덧붙임 —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는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무죄 주장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이며, 주장 자체를 이유로 한 불이익은 이 원칙과 양립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