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자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재판으로 인정될 손해배상금이 많아야 2천만 원, 3천만 원 정도로 예상되는 사건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원고 측에서는 소송 제기 전 1억 원, 많게는 2억 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구를 받은 분이 상담실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1억 원이라도 주고, 이 일을 끝내고 싶다고.
그 말씀이 나오기까지의 사정을 보면 무리도 아닙니다. 회사 앞에 찾아와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직장이나 학교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려져서는 안 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직전의 상황에서 받는 정신적 압박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짐작하기 어려운 크기입니다. 지금 당장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라고 표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시는 상대방 역시 배우자의 부정으로 큰 상처를 입은 분입니다. 그 상처가 그런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빠른 합의가 의뢰인에게 최선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소장이 오기 전에 협상으로 분쟁을 끝내는 일은 제가 하는 일의 큰 부분이고,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소송의 수행이 아닐 때도 있다고 말씀드려 왔습니다. 그러니 1억 원을 주고라도 끝내겠다는 결심은 언뜻 보면 제가 권해 온 방향의 끝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구액이 지나치게 과다한 자리에서, 저는 보통 합의를 말립니다. 금액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크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보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은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의외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을 의뢰인은 혼자 지나가지 않습니다. 변호사와 함께 통과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1억 원이나 2억 원이라는 돈을 주고 합의한 뒤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이 물음에는 저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합의를 결정하는 것은 오늘의 고통인데, 그 값은 길게는 몇 년을 두고 치러야하기 때문입니다.
빠른 합의를 권할 때도, 합의를 말릴 때도 제가 따져 보는 것은 같습니다. 이 결정이 의뢰인에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입니다. 어떤 자리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합의하는 것이 그 답이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것이 그 답이 됩니다. 답을 가르는 것은 합의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입니다.
1억 원이라도 주고 끝내고 싶다는 말씀 앞에서 제가 잠시 말을 멈추는 이유는, 단순히 그 돈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온 시간 때문입니다. 그 결정은 가장 고통스러운 밤에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 고통이 지나간 뒤에도 같은 결정을 하셨을지, 저는 끝내 확신하지 못한 채 말리는 쪽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통과해 드리는 것으로, 확신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