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 한살 나이를 먹고, 변호사를 오래 하다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그렇습니다.
계산이 맞지 않는 소송이라는 것을 다 듣고도,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시작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이미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감정의 대립 속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바라던 결과를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손해까지 보셨는데도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씁쓸한 감정이 얼굴에 아예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절대 감정이 동요되거나, 변호사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그러시지 않습니다. 불리한 기일의 경과를 보고드릴 때에도, 패소 판결문을 함께 읽어 드리는 날에도, 비용을 정산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날에도 그렇습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독한 분들입니다.
변호사 앞은 사실 무너져도 되는 자리입니다. 법정에서 하지 못하는 말을 하시라고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분들은 이 방에서마저 흐트러지지 않으십니다.
젊었을 때의 저는 그 모습을 그냥 성격이 강한 분이라고 읽었습니다. 강한 분이니 괜찮으시겠거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분들이 더 마음에 짠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짠한 마음이 가 닿는 곳은 그분들이 받아 든 결과가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겪고, 변호사를 선임해서까지 다투었는데, 그 억울함을 풀지 못했거나 경제적으로 손해까지 보셨음에도,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그 노력입니다. 냉정함이 타고난 성격이라면 힘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애써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고, 그 힘든 일을 그분들은 끝까지 해내고 계신 것입니다.
결과 앞에서 서운한 말씀을 쏟아내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 마음도 압니다. 쏟아내는 것도 사람의 일이고, 그것을 받아드리는 것도 변호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쏟아낼 곳을 찾지 못한 채 혼자서 그 무게를 다 드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동요하지 않는 것과 아무렇지 않은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변호사의 관록인지, 그저 나이가 드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노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라면, 나이를 먹는 일이 잃기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그런 분을 다시 뵈면 무엇을 다르게 해 드릴 수 있을지, 그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냉정함을 예전처럼 강한 성격으로만 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