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상담실에서 부모님을 마주 앉으면, 거의 예외 없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잘못 키웠습니다."
자녀가 저지른 일인데, 그 자리에서 자신을 탓하는 쪽은 언제나 부모입니다. 자녀의 잘못이 본질적으로는 자기 잘못이라고,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제가 만나 온 부모님들은 거의 그랬습니다.
저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착하고 성실했던 아이들
제가 맡은 사건 중에는 착하고 성실했던 아이들이 있습니다.
말썽을 부린 적이 없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적도 없던 아이들입니다. 그 기대를 끝까지 감당해 보려다가, 어느 지점에서 무너집니다. 그러고 나서 제 앞에 옵니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탈선의 길로 접어든 경우를,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기록에는 그 과정이 없습니다. 무너진 결과만 있습니다. 언제부터 힘들었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냈는지, 그런 것은 수사기록의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반박은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녀는 성인이고, 선택은 본인이 한 것이고,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전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전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부모님의 얼굴이 펴지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위로를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들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계십니다. 제가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장과정을 듣습니다
그 대신 저는,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를 듣습니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합니다. 사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시간입니다. 언제 어느 학교를 다녔고, 무엇을 잘했고, 어느 해에 무엇이 달라졌고, 그때 부모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조서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도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다 보니 부모로서 함께 마음 아파할 부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제 아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남의 집 아이의 성장과정을 듣는 동안, 제 아들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 아들은 아직 어립니다. 그런데도 제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그 아이 역시 부모의 높은 기대라는 점에서 고통받고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제야 제가 아들에게 미안한 부분, 미안해해야 할 부분이 비로소 보입니다.
이것은 제가 아버지로서 반성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상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 부모님의 말을 반박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제 아들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보입니다
그렇게 제 아들을 한 번 지나오고 나면, 문제를 저지른 그 아이가 다시 보입니다.
제 아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 아들의 어떤 부분이 그 아이에게 비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도 많이 바뀝니다. 마치 제 아들의 일부분을 보는 것처럼.
그 방에서
우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럴 때 저는 휴지를 건네고, 감정을 추스르실 시간을 기다립니다. 달리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제 앞에 앉으신 분들은, 다른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도 겪지 않을 일을 지금 겪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 방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위로는 없습니다.
다만 그 방을 나설 때, 그 아이는 더 이상 남의 집 아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