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료 변호사 두 사람과 함께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다 보면 의견이 갈리는 날이 있고, 저의 생각과 다른 동료들의 결정을 제가 따라간 적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걱정을 해 볼 법도 합니다. 훗날 저의 생각이 맞았던 것으로 드러나면, 그때는 동료들을 탓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여기에는 맞는 길이 있고 틀린 길이 있지 않습니다. 참과 거짓으로 일도양단할 수 있게, 그렇게 측정 가능하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시험문제를 채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여행의 경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대전을 거쳐 내려갈 수도 있고, 안동을 거쳐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동료들의 의견을 따라 안동을 거쳐 내려가다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하더라도, 제 의견이었던 대전 길에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가 보지 않은 길이 어땠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가정일 뿐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결정을 두고 "내 생각이 맞았다"고 말할 때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은, 가 본 길에서 겪은 어려움의 실물과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실물과 가정의 비교이니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경영의 결정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길의 결과는 영영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동료들을 탓하지 않는 것은 너그러워서가 아닙니다. 탓의 근거가 될 그 '드러남' 자체가 애초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따라가기로 한 경우 저는 저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과는 달랐지만, 동료들의 생각과 의견이 더 나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생각과 결정이 곧 저의 운명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남는 것은 그저 경영이라는 여정을 걸어가는 것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경영이라는 그 길을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동업이 설령 실패하더라도 동지들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저의 생각과 다른 결정을 따라가던 날의 걸음도 전혀 무겁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 길이 원래 저의 길이었을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