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식
[변호사칼럼] 호국의 달을 맞아

배철욱 법무법인 대세 대표변호사
제가 다녔던 법학전문대학원에는 노○○홀(hall)이라는 대형 첨단 강의실이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시설도 훌륭합니다.
그 강의실의 이름이 노○○홀이 된 이유는, 노○○이라는 동문께서 7억 원이 넘는 발전기금을 기부하셨고,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영원히 남기기 위하여 강의실 이름을 그렇게 붙였던 것입니다. 대학원 건물 자체의 이름은 ‘○○관’ 이었는데, 대기업인 ○○그룹에서 30억 원이 넘는 발전기금을 납부했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개인은 7억 원이라는 돈을 쉽게 벌기도 어렵거니와, 그만한 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위 기부자들이 경제적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기부도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사재의 일부를 기부한다는 것은 추앙받아 마땅한 일이고, 그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강의실이나 건물에 이름을 붙이거나 혹은 로비에 그 숭고한 취지를 남기는 것도 모두 합당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7억 원 혹은 30억 원보다 더 큰 무언가, 예를 들면 그의 하나뿐인 목숨을 기부했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가는 고통도 감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자신의 목숨을 내놓다니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부한 분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왜냐하면 6월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해야 할 호국의 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현충일을 맞아 두 아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현충원을 찾은 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현충일 당일 오전에 아이들과 참배를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현충원 매점에서 두 아이들에게 참배용 조화를 하나씩 사주고, 인근 사병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구입한 조화를 마음에 드는 분께 놓아드리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묘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가 각자 자신이 맘에 드는 어느 묘비 앞에 헌화를 하였습니다.
첫째 아이는 육군병장 최종근의 묘비 앞에, 둘째 아이는 육군중사 유범상의 묘비 앞에 헌화하였습니다. 물론 두 분 모두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덧 반가웠습니다.
독자분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시겠지만, 저 역시 평소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에 대해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제 외조부께서도 6·25전쟁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셨고, 아버지께서도 월남전에 참전하셨습니다. 특히 존경해 왔던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안 의사님이 의거하신 중국 하얼빈역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을 생각함에 있어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자녀가 없을 때는 순국선열들을 단순히 위대한 분들로만 생각해 왔지만, 일곱 살 네 살 두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순국선열들과 그들의 가족의 삶이 얼마나 애달팠을까 하는 인간적 연민이 더 느껴집니다.
순국선열 중 누군가는 저와 같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녀를 두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참배를 마치고 최 병장님, 유 중사님의 가족은 잘 지내셨는지 그분들의 자녀는 부족함 없이 성장하셨는지 등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현충원에 다녀온 후, 한자공부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는 일곱 살 큰아이가 현충원의 ‘현’자가 무슨 자인지를 묻습니다. 저도 문과생이고 법대출신이므로 한자를 조금은 아는지라, ‘드러낼 현’이라고 설명하고 혹시 모르는 마음에 포털사이트 옥편을 찾아보니 ‘나타낼 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행히 비슷한 의미입니다. 현충일은 국가와 순국선열이 보여주셨던 충성의 마음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충성의 마음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날인 것입니다. 현충일 하루 동안 이런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나도록 그들을 추모하고 기렸는지 되돌아봅니다.다시 한 번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대들 덕분에 저와 저희 아이들이 있습니다. 배철욱 법무법인 대세 대표변호사
그 강의실의 이름이 노○○홀이 된 이유는, 노○○이라는 동문께서 7억 원이 넘는 발전기금을 기부하셨고,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영원히 남기기 위하여 강의실 이름을 그렇게 붙였던 것입니다. 대학원 건물 자체의 이름은 ‘○○관’ 이었는데, 대기업인 ○○그룹에서 30억 원이 넘는 발전기금을 납부했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개인은 7억 원이라는 돈을 쉽게 벌기도 어렵거니와, 그만한 돈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위 기부자들이 경제적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기부도 가능했겠지만, 그래도 사재의 일부를 기부한다는 것은 추앙받아 마땅한 일이고, 그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강의실이나 건물에 이름을 붙이거나 혹은 로비에 그 숭고한 취지를 남기는 것도 모두 합당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7억 원 혹은 30억 원보다 더 큰 무언가, 예를 들면 그의 하나뿐인 목숨을 기부했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가는 고통도 감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자신의 목숨을 내놓다니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부한 분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왜냐하면 6월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해야 할 호국의 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현충일을 맞아 두 아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현충원을 찾은 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현충일 당일 오전에 아이들과 참배를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현충원 매점에서 두 아이들에게 참배용 조화를 하나씩 사주고, 인근 사병 묘역으로 향했습니다. 구입한 조화를 마음에 드는 분께 놓아드리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묘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가 각자 자신이 맘에 드는 어느 묘비 앞에 헌화를 하였습니다.
첫째 아이는 육군병장 최종근의 묘비 앞에, 둘째 아이는 육군중사 유범상의 묘비 앞에 헌화하였습니다. 물론 두 분 모두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지만 어느덧 반가웠습니다.
독자분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시겠지만, 저 역시 평소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에 대해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제 외조부께서도 6·25전쟁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셨고, 아버지께서도 월남전에 참전하셨습니다. 특히 존경해 왔던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안 의사님이 의거하신 중국 하얼빈역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을 생각함에 있어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자녀가 없을 때는 순국선열들을 단순히 위대한 분들로만 생각해 왔지만, 일곱 살 네 살 두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순국선열들과 그들의 가족의 삶이 얼마나 애달팠을까 하는 인간적 연민이 더 느껴집니다.
순국선열 중 누군가는 저와 같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녀를 두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참배를 마치고 최 병장님, 유 중사님의 가족은 잘 지내셨는지 그분들의 자녀는 부족함 없이 성장하셨는지 등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현충원에 다녀온 후, 한자공부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는 일곱 살 큰아이가 현충원의 ‘현’자가 무슨 자인지를 묻습니다. 저도 문과생이고 법대출신이므로 한자를 조금은 아는지라, ‘드러낼 현’이라고 설명하고 혹시 모르는 마음에 포털사이트 옥편을 찾아보니 ‘나타낼 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행히 비슷한 의미입니다. 현충일은 국가와 순국선열이 보여주셨던 충성의 마음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충성의 마음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날인 것입니다. 현충일 하루 동안 이런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나도록 그들을 추모하고 기렸는지 되돌아봅니다.다시 한 번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대들 덕분에 저와 저희 아이들이 있습니다. 배철욱 법무법인 대세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