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욱 법무법인 대세 대표변호사
[금강일보] 모 방송사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연예인들 특히 군대에 이미 다녀온 남성연예인들이 다시 군대훈련을 받으며 겪는 좌충우돌 스토리는, 군대에 다녀오신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군 관련 경험이 없으신 분들에게도 큰 재미를 주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해병대 훈련소 편에서 소대장으로부터 점호를 받는 장면, 그 중에서도 소대장이 흰장갑을 낀 채 창문틀, 총기함 뒤편의 먼지를 닦아내고 이를 지적하여 훈련병들의 넋이 나가게 하는 장면이 재미있었으면서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장면이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았던 것은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식선에서 생각할 때, 창문틀 등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설령 청소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흰장갑을 끼고 닦아 내면 반드시 뭐라도 묻어 나올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빗대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있나’라는 표현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흰장갑을 끼고 창문틀, 총기함 뒤쪽의 먼지도 확인해 보아야 할 때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공감하듯, 이와 같은 ‘흰장갑 먼지 확인’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매우 예외적이고 제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로지 훈련소 소대장의 판단에 따라 흰장갑을 끼고 창틀이나 총기함 뒤편을 휘젓고 다닌다면 훈련병은 피곤해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소대장은 언제라도 훈련병을 괴롭힐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창틀 먼지는 언제나 나오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수사기관의 수사절차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의가 있습니다. 이를 비례원칙이나 침해최소원칙 혹은 남용금지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수사기관은 전문성과 법적 권한을 바탕으로, 마치 소대장처럼 ‘흰장갑 먼지 검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현미경과 같은 시각으로 법을 위반한 세세한 잘잘못을 모두 판단하여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에 그러한 능력이 있으나 이를 절제하여야 한다는 것이 바로 비례원칙, 침해최소원칙, 남용금지원칙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침해최소원칙을 규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2항에서 강제처분은 필요최소한도의 범위에서만 해야 함을 정하고 있고,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10조 제1항에서 강제수사는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되 수사대상자의 권익침해의 정도가 더 적은 절차와 방법을 선택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고,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4조에서도 수사준칙과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인권보호수사규칙 제6조에서 검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를 벗어나 수사해서는 아니 됨을, 제8조 제2항에서 강제수사가 필요한 경우에도 대상자의 권익 침해의 정도가 더 낮은 수사 절차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례원칙, 침해최소원칙, 남용금지원칙이 위와 같이 헌번, 법률, 대통령령 등에 빠짐없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정 자체가 추상적이다보니 그에 대한 모든 판단은 사실상 오로지 수사기관의 판단에 맡겨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남용이고 무엇이 남용이 아닌지 판단할 근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또한 남용이라고 판단된 사례도 거의 없습니다. 수사권남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사실상 유일한 기관은 법원일 것인데, 법원으로서는 절차상 위법함이 명백한 사안이 아닌 수사권남용을 인정한 경우가 매우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법원은 흰장갑으로 훑은 결과이더라도 일단 ‘먼지(위법)가 확인’되었으므로, 유죄판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결국 수사권남용은 수사기관 스스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검사 혹은 수사관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여 수사권 남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권력이 자신의 과오를 스스로 발견하기는 어렵고, 이를 스스로 통제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나아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모든 권력은 민주적 정당성에 의한 통제 및 권력기관 상호 견제에 의한 통제 하에 있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최근 검수완박을 둘러싼 수사권 조정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과 의견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모든 국민이 권력의 남용 특히 수사권의 남용에서 언제나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견도 논의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회를 적어보았습니다. 배철욱 법무법인 대세 대표변호사
출처 :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6779
